(사진) 인하대 산업경영공학과 이우기 교수

애들 학비

가난한 나라에서는 아동들을 학교 대신 밖으로 내몬다. 어린 애들을 공장에나 쓰레기장에도 보내서 한 푼이라도 벌어오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머리카락을 잘라서라도 애들 학비를 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도 교육비는 챙겼고, 지금도 그렇다. 한국은 역대로 그래왔다.

그런데 갑자기 신임교수 연구비와 차세대 연구자를 위한 학비가 추운 바깥에 내몰리고 있다.

올해 31.1조원에서 내년 25.9조원으로 총액이 줄었고, 국가예산 대비 연구비 비중도 3.9%로 쪼그라졌다.

정부설립이래 항상 우대하던 연구비를 사상 최초로 총액을 16.6% 왕창 잘라낸 것이다. 연구비 삭감으로 젊은 연구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특히 신진교수 연구비가 사라져서 젊은 교수들의 희망의 싹이 끊어졌다.

연구비 정치공학

선거를 앞두니 국가연구비도 본질보다 정치공학이 난무한다. 연구비 축소는 국가재정 적자 때문이라 한다. 연구비 카르텔이라는 모토도 내세운다.

수능 카르텔로 재미를 봤으니, “적폐몰이”의 재탕 정도 지지를 기대한 걸까? 신나게 카르텔 몰이를 했는데, 댓글부대가 따라오지 않는다. 묵은 카르텔이 아니라 어린 새싹들이 칼질 된 것이다.

연구비도 야당의 선거전략에 포함되어, 이미 젊은 학자들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지난 정권의 형편없는 경제운용 능력과 국제적 외톨이 외교를 했어도 지지기반이 튼튼했던 것은 선심을 마구 썼기 때문이다.

51대 49의 팽팽한 상황에서 현정권은 인색하게 굴면서 선거에 나섰으니 필패각이다. 만일 선거에 진다면 연구비 삭감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실패가 떠오른다. 무상급식 거부에 정치 생명을 걸라고 언론이 부추겼다가 대실패로 끝났었다.

국민 다수가 무상급식이 괜찮다고 판단했다. 교육세도 많이 내는데 그 정도 혜택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언론도 알뜰한 살림에 대한 환각이 심하다. 예고없이 연구비에 대거 칼질하는 것은 현실적 알뜰도 아니고, 미래형 리더쉽도 아니다.

연구비 판짜기

이왕 판이 흔들렸으니 차라리 대개편하는 건 어떨까? 연구개발비는 사실 큰 변화가 필요하다.

핵심적 문제는 연구를 방해하는 시스템이다. 꾸준히 한가지 분야를 연구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매번 새로운 주제로 제안서를 내야 된다. 오래된 주제를 붙들고 있다가는 손가락 빨게 된다. 학생이 끊어지고, 장비는 녹슬며, 학술대회 참석이 곤란해지고, 논문이 안 나오는 악순환에 내몰린다.

연구주제를 자주 바꾸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은 연구를 방해하는 것이다.

초대형과제와 중소과제

두 가지 큰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사업화과제는 우선순위를 낮춰야 한다.

국가지원 연구과제는 크게 보아 원천기술개발지원 과제와 사업화지원 과제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과기정통부에서 후자는 산자부와 개별부처에서 지원한다.

사업화 지원과제는 규모도 크지만, 국가에서 나설 필요가 거의 없다. 업체들이 알아서 돈 되는 일은 하기 때문이다.

둘째, 초대형과제 대신 소형 다수과제로의 변화이다.

원천기술 개발과제에서도 초대형 과제는 크게 원천기술개발형과 사회문제해결형이 있는데, 원천기술은 초대형 과제로 달성되는 경우가 드물다.

초대형 과제를 선호하는 이유는 전시효과가 크고, 연구비 분배 관리자인 공무원들이 성과 입증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노벨상 집착

특히 노벨상 집착을 포기해야 한다.

노벨상은 근원적 주제로서 집착에 가까운 연구를 평생해서 말년에 얻는 것이 보통이다. 단기간에 거금을 투자하는 건 방해가 된다.

해당 연구자가 노벨상 후보라면서 초대형 과제를 못 줘서 안달이다. 사실 연구책임자로 연구비를 수주하는 순간부터 연구를 포기하고 행정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는 상시 감사에 시달리게 되니까, 당연히 노벨상급 연구를 망치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노벨상에 대한 관심을 꺼야 역설적으로 가능성이 커진다.

기본 연구비

대안은 기초 연구비 확대이다.

실제 연구성과는 한 가지 주제를 오래 연구한 결과가 훨씬 좋다.

교수에게는 기본연구비, 대학원생에게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국가가 책임 지원한다. 독일이 그렇고, 일본이 그러하다.

거금을 준다고 연구결과가 비례로 커지지 않는다. 작아도 꾸준히 지원되면 뿌리를 내리고 연구교류가 활발해진다.

그러려면 연구비는 작게 꾸준히 지원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래 연구원들은 편집증을 가진 너드(Nerd)들이 많다.

개인 연구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국제 국내 학술행사 참가비 정도이다. 관리와 성과가 필요하면, 중급 과제를 분야별로 전략적으로 운영하면 된다.

일본이 꾸준히 노벨상이 나오는 것은 오래전에 세계 수준에 도달한 연구인력과 인프라가 있고, 연구도 오타쿠처럼 하는 배경도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꾸준히 소액으로 지원해주는 연구비가 가장 중요한 바탕이다.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꾸준히 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벨상도 나오고 의미있는 결과물이 열매맺는 것이다. 만일 일본도 한국처럼 했으면 벌써 망했다. 매년 새로운 연구주제를 제안해서 연구비를 타가게 했다면 노벨상은 어려웠을 것이다.

은퇴 연구자

은퇴 교수와 연구원에 대한 작은 연구비 지속도 중요하다. 요즘은 은퇴해도 건강하고, 연구 능력이 출중한 경우가 많다.

일생 특정분야를 연구해온 연구내용과 역량을 사장시키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실이다. 소액 연구비 지원기준은 이미 명확하므로 구태여 관리할 필요가 없다. 연구실적이 있는 사람들을 정해서 년1회 정도 실적 입력하는 정보시스템으로 충분하다.

인문계 연구비

인문계, 특히 문사철 교수들에게 해외방문을 조건으로 연구비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글로벌”에 적합하다.

의견 분열이 심한 나라의 장래를 깊이 생각한다면, 일본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본 극좌 과격파가 급속히 와해된 원인의 하나로 인문계열의 교수들의 해외방문연구 지원이 계기가 되었다.

해당국가에 실제로 가보면서 환상을 깨게 된 것이다. 인문계 대학원생과 교수들은 해외출장의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의 가치와 위상을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게 해줘야 한다.

특히 교수로 택했으면, 그들을 지속적으로 키워주는 것이 국가와 본인에게 긴요하다. 이들의 연구인맥과 수준이 올라가면 나라 전체가 혜택을 본다.

연구비 전략

요약하면 정부 연구비 축소와 확대이다. 사업화 관련된 과제 및 초대형과제는 축소하고, 동시에 중급규모의 연구비와 풀뿌리 기초연구비는 대폭 확대하자.

만일 현 정권에서 이런 정책변화를 안 하면, 다음번에는 아마도 이것을 기본소득당에서 가져갈 것이다. “기본”연구비라는 예쁜 이름으로. 누가 가져가든 큰 폭의 지지율을 가져가는 것을 시기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