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윤기(1741~1826)의 ‘협리한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당나라 때 ‘이섭’이란 사람이 도적을 만나자 시를 한 수 지어 주었다.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지금 세상 절반은 그대 같은 사람들이네.” 세상 사람들 겉으로 보기 멀쩡하지만 속내는 절반이 도적놈이란 뜻이다.
■부정을 저지르는 벼슬아치가 큰 도적
북위의 이부상서 ‘원수의’는 벼슬자리의 값을 달리해 팔아먹었다. ‘고거’란 사람이 상당군 태수 자리를 원했지만 거절당했다. ‘고거’는 “도적이야!”하고 외쳤다. 사람들이 “대낮의 관아에 무슨 도적이 든단 말입니까?”라고 하자, ‘고거’는 원수의를 가리키며 “뇌물을 많이 바친 자가 벼슬을 얻었습니다. 이게 도적질이 아니고 무어란 말입니까?”하였다. 곧 뇌물 받아먹는 벼슬아치가 도적이란 말이다.
송나라 때 ‘정광’은 원래 해적이었다. 투항하자 나라에서 그에게 벼슬을 주었다. 하지만 관청에 출근해도 아무도 그와 함께하지 않았다. 불쾌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출근했더니 동료들이 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정광’은 동료들에게 졸작 한 수를 보여드린다고 하며 이렇게 읊었다.
“정광이 시 한 수 벼슬하는 여러분께 올리는데/ 문관이건 무관이건 보아하니 똑 같네요/ 벼슬아치는 벼슬 살며 되레 도적질을 하고/ 정광은 도적질 하다가 되레 벼슬아치가 되었지요.” 관직을 이용해 도적질을 하는 벼슬아치가 도적질을 하다 벼슬을 하는 자신만 못하다는 말이다.
■큰 도둑 없으면 작은 도둑도 없어질 것을
벼슬을 하는 것과 도적질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하지만 윤기는 벼슬아치가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나라와 백성을 망친다는 점에서 그 죄가 도적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과거와 인사, 소송 판결 등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남의 땅을 빼앗고 백성의 고혈을 빨아 죽게 만드는 자들이야말로 대적이다. 국법으로 처형해야 할 자들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그 벼슬아치들은 도적으로 여기지도 않고 도리어 사랑하고 떠받들고, 담장을 넘어 재물을 훔치는 자들만 도적이라고 한다. ‘이섭’과 ‘고거’, ‘정광’이 격분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기’의 말을 듣고 그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상의 도적을 따져본다면, 안에서는 높은 초헌을 탄 채 구종별배를 시켜 물렀거라 소리 요란하게 지르게 하고, 밖으로는 일산을 펼쳐 쓰고 깃발이며 도끼를 세워 들고 다니는 자가 정말 큰 도적이라네. 쥐나 개처럼 훔치는 자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내몰리고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시달린 나머지 생업을 잃고서 항심이 없어진 경우라네. 그들은 구차하게 목숨만 이어가고 있을 뿐이니, 그 사정을 보면 그저 딱할 뿐이네. 그런데 지금 큰 도적이 작은 도적을 잡는다고 설치니, 그 아니 우스운가?”
‘윤기’는 이 말을 이렇게 받았다. “옛날 노나라 ‘계강자’가 도둑이 들끓는다고 걱정을 하자,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당신이 탐욕을 부리지 않으면 백성들에게 상을 주며 도둑질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둑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다만 큰 도둑을 없애면 작은 도둑은 저절로 없어진다. 이 시절 모두 적폐청산과 개혁을 말하는데, 그것은 어디서 시작되어야 할까. ‘윤기’의 큰 도둑과 작은 도둑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이렇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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