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우리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사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심지어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희생해서라도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한다고 믿는 부모들이 많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일류대학을 들어갈 수 없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극기 훈련을 하듯 공부를 한다. 잘 정리된 내용과 시험 푸는 요령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닌다. 그러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좋은 대학을 가서 나중에 성공한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이것은 착시현상이다.
21세기는 20세기와 달리 다양한 경험과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20세기는 대량생산체제의 사회였기 때문에 관료조직이 효율성이 높았다. 이런 조직에서는 한 가지 전문성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21세기는 전혀 다르다. 인내심 많고 성실하다고 인정받는 시대는 끝났다. 유학시절 초기에 세미나에서 다른 미국 친구들처럼 토론을 잘 못하는 이유가 영어와 전공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밤을 새워 책을 읽고 가도 토론에 끼어들기 어려웠다. 교수는 토론에서 내용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의 생각을 물어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공부를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잠을 줄이고 인내심을 발휘해서 외우고 또 외워서 시험을 잘 보면 공부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이디어가 없으면 멍청한 친구로 취급받는다.
사실 공부는 노동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지적 호기심이 없으면 공부에서 성공할 수 없다. 사교육을 받는 것은 단기적으로 공부의 효율을 높이는 극약처방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기초체력을 떨어뜨려 오히려 공부에 흥미를 잃게 만든다.
뛰어난 성적으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한 특목고 출신들이 중도에서 많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 더 깊이 있는 학문에 빠져들기보다 스펙을 쌓고 학점을 잘 관리하면 좋은 직장을 얻어 성공한다는 착시현상에 빠져있다.
단기적으로 좋은 직장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오십대 초반에 은퇴를 각오해야 한다. 지적 호기심을 갖고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이 스펙이나 학점보다 더 중요하다. 초중고에서도 자신이 흥미를 갖고 노력하면 잘할 수 있는데 꼭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착시현상이다.
이런 사교육의 착시현상 때문에 사교육비 부담이 커서 자녀를 적게 낳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 젊은 부모들이 많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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