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사진은 서울대학교 마당패 ‘탈’이 학생회관에서 임산부의 어려운 직장생활을 풍자하는 ‘애물단지’ 정기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울대는 부족한 기숙사와 교직원 아파트 문화체육시설 등을 그냥 확보하려 시흥시와 손을 잡았지만, 이는 교육계획과는 동떨어진 장사계획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명분을 잃어 시흥캠퍼스가 ‘애물단지’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덩달아 시흥시민들 사이에서도 대학 지원시설유치에 1조원을 투입하려는 계획은 ‘바보행정’이라며 강한 거부감이 확산돼 서울대와 시흥시 모두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리는 형국이다.
10월 23일 ‘시흥캠퍼스’ 관련 임정기 기획부총장의 편지에 드리는 답장
임정기 부총장님! 드디어 부총장님이 나서시는 것을 보니 천막농성을 통한 학생들의 분노와 염원이 불통의 벽을 넘어 본부까지 전달되었나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부총장이 학생들과 소통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신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부총장님의 편지가 시흥캠퍼스에 관한 많은 문제점들에 대한 해명과 답변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흥캠퍼스를 둘러싼 뭇 진실들을 제대로 알리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부총장님께 학생들의 입장을 다시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RC 문제에 관한 의혹을 해소하고, 강제 기숙프로그램이 없음을 약속해 주십시오.
부총장님은 총학생회가 주장하는 RC계획의 전면 철회가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특정 대학, 학부의 이전이 전제되는 RC를 검토하거나 신입생을 의무수용하려는 계획이 없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러나 ‘계획이 없다’는 말은 이미 몇 달 전부터 학생회 간부들에게, 그리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획처와 추진단이 하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학생들이 왜 분노했는지 아십니까?
본부는 48차 교개협을 진행하고 학내언론 인터뷰가 한창 진행되던 7~9월이 되기 전인 6월 12일 2차 기획부학(원)장회의에 회의록에 ‘시흥캠퍼스’ 안건 하부항목에 RC와 관련한 기본계획이 작성되고 있다고 써놓지 않았습니까.
지난 8월에 열린 4차 이사회의 회의 자료에는 미래교육기획위원회가 보고한 ‘기숙사 시설 확충을 통한 학부 1학년 전인교육’이 올라와 있으며 학부 교육 이념의 재정립과 실현을 위해 ‘RC 도입’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사회는 법인 서울대의 최고 의결기구이며, 이 자리에는 학내에서 가장 중요한 소수 사안들이 여러 심의를 거쳐 보고되어 왔습니다. 즉 이사회에 보고안건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은 RC 계획의 추진을 확실하게 내다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학교는 ‘1학년 강제의무 RC 계획은 없음’이라는 말만 수개월 전부터 지금까지 반복해오고 있습니다. 민간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해 2013년 4월에 발간한 ‘공모지침서’에는 캠퍼스 용도로 Residential College를 명시해 놓고 있습니다.
대체 학교가 ‘RC 계획은 없음’이라고 말하는 동안 뒤에서 꾸준히 추진되고 있었던 RC와 관련한 논의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학생들이 ‘강제 기숙 프로그램을 실시하지 말라고 약속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똑같지 않습니까.
의도적으로 그러시는지, 아니면 학생들의 요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학교와 시흥시가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RC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해명이라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생들이 본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실 수도 있겠지만, 본디 신뢰관계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사람과는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최고 책임자인 총장이 나서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강제 기숙형 프로그램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도록 해 주십시오.
■교육 계획과는 동떨어진 캠퍼스 건설. 이것이 장사 계획입니까, 교육계획입니까
부총장님은 현재 추진 중인 “본 계약 체결은...시흥시와 Special Purpose Company (SPC) 간의 토지 매매대금과 서울대학교에 대한 지원금 및 지원방법 등이 제시되는 수준에서 체결”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세부적인 교육 컨텐츠 등은 포함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7년간 밀실 추진되어 온 시흥캠퍼스의 본 계약을 무기한 연기하고 구성원 합의를 거치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본 계약은 별 거 없다’는 말로 화답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단순히 교육프로그램이 본 계약에서 모두 확정될 것이라 생각해서 본 계약을 무기한 연기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요구는 부동산 경기에 의존해 무리하게 캠퍼스를 확장하려는 학교의 정책,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여되는 토건사업에 대해 학내 합의 하나 없었던 대학의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본 계약에서는 토지 매매대금과 토지개발의 기대수익, 그리고 이에 비추어 서울대학교가 얻어올 수 있는 지원금의 규모가 결정됩니다. 시흥캠퍼스 개발비용은 전적으로 그 옆에 짓는 아파트 분양비용으로 마련하기 때문에 본 계약에서 그 규모와 기대수익을 정하여 계약을 맺게 되면 그 순간 서울대학교는 1조원짜리의 부지에 이루어지는 수 천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토건사업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흥캠퍼스의 필요성과 활용계획도 확인하지 않은 채 이러한 천문학적인 토건사업에 동참하는 것, 선후관계가 잘못 짜여져 있는 것 아닙니까.
추진단장님은 10월 22일 면담 자리에서 시흥캠퍼스 사업이 ‘용산’의 경우처럼 표류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동산 경기에 따라 표류할 수 있는 사업이므로, 지금부터 그 내용들을 상세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역시나 교육의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발언입니다. 서울대학교 법인은 장사를 하기 위해 캠퍼스를 조성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교육의 질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캠퍼스를 조성하는 것입니까.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에도 침묵하지 마십시오. 본부 앞에 걸려있는 플래카드에는 ‘밀실추진 7년’에 대한 문제제기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친히 학생들에게 편지까지 쓰신 부총장님이 본부 문 앞에 적혀 있는 문제제기에 대해 대안을 내놓지 않고 계시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본 계약은 양해각서와는 달리 법적 구속력과 책임 의무를 지닙니다. 더 이상 ‘구성원과 전면 재논의’는 불가능해집니다. 부총장님은 “시흥캠퍼스라는 그릇에 어떤 컨텐츠를 어떻게 담을지”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상식적으로 시흥캠퍼스라는 그릇의 모양과 규모를 정하는 단계에서부터 구성원들과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본 계약을 체결하기도 전, 즉 아직 그릇을 만들기도 전입니다. 시흥캠퍼스라는 그릇을 만들기도 전에, 본 계약 체결을 기정사실화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본 계약 체결 전에 구성원과 재논의하자는 것이 부총장님께는 그렇게 비상식적인 요구입니까.
■부총장님, 본 계약을 미루고 구성원과 논의합시다.
부총장님! 진실은 결국 드러납니다. 저희는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을 읽으며 총학생회와 학생대책위원회가 지금까지 전해드렸던 우려와 요구안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답변을 회피할 명분을 내세우는 데 급급하다는 인상밖에 받을 수 없었습니다.
RC에 관해 본부에서 학생들 몰래 추진해왔던, 본부 내부 회의와 이사회에 보고되어 온 바가 있지 않습니까. 아파트 장사를 해서 자금을 마련하고, 부동산 경기에 캠퍼스 건설 계획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7년간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지 않습니까.
부총장님, 진실을 직시하십시오. 학생들의 핵심적인 요구들을 피해가지 마십시오. 소꿉장난이 아닙니다. 1조원어치의 부지에 수 천억원의 캠퍼스와 아파트를 지어 장사를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본 계약을 미루고 재 논의합시다. ‘강제적인’ 또는 ‘의무적인’ 기숙 프로그램은 없다는 사실을 약속합시다. 대학교육에서 거주가 강제적으로 이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캠퍼스를 둘도 모자라 셋으로 쪼개서야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본부에서 RC와 관련하여 서로 다른 말들을 내놓았던 데 대해서는 침묵한 채 똑같은 말만 반복하지 맙시다. 우리, 대학의 역할과 학내 민주주의라는 기본에 충실하게 다시 논의해 봅시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시흥캠퍼스 학생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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